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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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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입니다. 여름이면 피어나는 아련한 꽃. 아침에 피어 해가 떠오르면 얼마가지 않아 지는 꽃이죠. 그래서 누군가는 사랑을 나팔꽃에 비유했죠.   금환이란 가수는 '나팔꽃 청춘'에서 '아침에 피어나는 나팔꽃 청춘 피고 지고 또 피는 인생이여'라고 했죠. 하루에 피고지는 일일화입니다.  그럴 지라도, 잠시 피었단 지는 나팔꽃 일지라도  열심히 살아갑시다.

무화과, 폭염 속에서 익어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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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화과가 익는 여름 한낮의 햇볕이 가장 높이 걸린 시간, 무화과나무의 넓은 잎은 마른 숨을 쉬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람도 뜨거워, 잎의 뒤집힌 면에서는 잠깐씩 은빛이 번졌다. 잎맥은 손바닥의 선처럼 선명했고, 그 그늘 아래에는 아직 푸른 열매와 붉은 기운을 막 품기 시작한 열매가 서로 다른 얼굴로 매달려 있었다. 하늘은 희게 달아올랐고, 잎 가장자리에서는 열기가 얇게 흔들렸다. 사람이라면 얼른 그늘을 찾을 시간에, 무화과는 피할 곳 없는 가지 끝에서 온몸으로 볕을 받고 있었다. 여름의 열매는 대개 조용히 익는다. 단단하던 껍질이 조금씩 풀리고, 초록 속으로 자주빛이 번진다. 그 변화는 먼 곳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며칠 사이 둥근 몸에는 계절이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가 드러난다. 잎이 만들어 준 짧은 그늘과 밤마다 내려앉은 이슬까지, 모두 열매의 속으로 스며든 듯하다. 너무 강한 빛은 무엇이든 시들게 할 듯하지만, 어떤 것은 그 빛을 안쪽으로 받아들여 단맛으로 바꾼다. 무화과는 말없이 그 과정을 견뎌 낸 흔적처럼 가지에 매달려 있다. 폭염은 사람들의 하루를 좁힌다. 아스팔트 위를 서둘러 건너고, 얼음이 든 물병을 손에 쥐며, 낮의 약속을 저녁으로 미루게 한다. 누군가는 뜨거운 길 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고, 누군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소식을 기다리며 창가에 오래 앉아 있다. 그런 계절에 무화과 가지를 바라보면, 견딤이란 늘 이를 악문 채 버티는 모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잎을 넓게 펼친 채 빛과 바람을 함께 받아들이고, 열매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색이 아니라 제 안에서 차오른 시간을 드러낸다. 사람의 삶도 그러하여, 남의 나무에 열린 열매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만 제 시간이 익어 가는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이 오래 붙들고 있는 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견디는 조용한 노동은 대개 잎 속에 가려져 있다. 그 침묵의 시간이 길다고 해서 삶이 멈춘 것은 아니다. 아직 푸른 열매가 덜...

배롱나무꽃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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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롱나무 피는 계절 한낮의 열기가 골목 바닥에서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저녁, 담장 너머로 배롱나무 가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낮에는 지나치며 보지 못했던 꽃들이 어둑한 빛 속에서 더 또렷하였다. 살구빛과 연분홍의 작은 꽃송이들은 잎 사이에 무리를 이루고, 바람이 닿을 때마다 한꺼번에 숨을 들이쉬는 듯 가볍게 떨었다. 담벼락에는 낮의 햇빛이 남긴 희미한 열기가 손바닥처럼 붙어 있었고, 멀리서는 에어컨 실외기의 낮은 울음이 끊겼다 이어졌다. 낮 동안 뜨거워진 아스팔트에서는 비에 젖었다가 마른 흙 냄새가 천천히 올라왔고, 화분을 끌어 들이는 소리와 오토바이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배롱나무를 보면 먼저 매끈한 줄기가 눈에 든다. 오래된 나무의 껍질은 벗겨지고 겹쳐지며, 비가 지나간 뒤의 벽처럼 연한 갈색과 회색을 드러낸다. 손끝으로 만지면 차갑고 단단할 것 같은데, 그 위에는 여름 내내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 같은 꽃이 얹힌다. 마치 매끈해지기까지 여러 번의 계절을 견뎌 낸 몸이 꽃의 무게쯤은 가볍게 떠받치는 것 같았다. 화려함은 단번에 피어오른 한 송이보다, 지친 계절의 한복판에서 오래도록 새 꽃을 내는 그 끈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 나무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은 대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장을 본 비닐봉지가 무릎 곁에서 바스락거리고, 퇴근한 이의 셔츠 등판에는 땀이 마르며, 아이는 앞서 달려가다 잠깐 고개를 든다. 각자의 하루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꽃을 바라볼 여유는 짧다. 그래도 누군가는 휴대전화 화면을 잠시 내리고, 누군가는 아파트 출입문 앞에서 신발의 모래를 털며 가지 끝을 본다. 그 짧은 눈길로도 나무는 충분한 듯, 꽃을 더 내보인다. 몇 해 전에는 이 꽃이 피기 시작하면 여름이 너무 길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기다리던 일이 좀처럼 결론 나지 않고, 마음이 먼저 마르는 날들이 이어질 때였다. 창문을 열면 밤공기보다 먼저 꽃의 희미한 냄새가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나무는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어제보다 조금 다른 꽃을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