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왜 노란색꽃이 많을까
여름에는 왜 노란색이 많을까
여름 산책을 하다 보면 유난히 노란색이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길가의 금계국, 해바라기, 원추리, 기생초, 망초 곁의 작은 들꽃, 뜨거운 볕을 받는 풀꽃들까지. 짙은 녹음 사이에서 노란 꽃은 마치 햇빛의 조각이 땅에 내려앉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묻습니다. 여름에는 왜 노란색이 많을까요.
식물학자의 대답은 먼저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여름에 노란 꽃이 다른 모든 색보다 반드시 더 많아진다는 보편 법칙은 없습니다. 봄에는 노란 민들레와 개나리가 있고, 가을에는 국화와 감국이 있으며, 계절마다 저마다의 노란 꽃이 피어납니다. 다만 여름의 강한 빛과 짙은 녹음, 그리고 이 시기에 피는 여러 식물이 겹치면서 우리는 여름을 노란색으로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름은 초록이 가장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나무의 잎은 무성해지고, 풀은 빠르게 자라며, 산과 들은 온통 짙은 녹색으로 채워집니다. 이때 노란색은 초록의 반대편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흰 꽃은 강한 햇빛 속에서 때로 흐릿해 보이고, 푸른 꽃은 잎의 색에 묻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란 꽃은 푸른 잎 사이에서 작은 등불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자연은 색의 대비를 통해 자신을 더 잘 보이게 하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노란 꽃잎의 빛깔에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 계열 색소가 큰 역할을 합니다. 당근과 호박, 옥수수에도 들어 있는 이 색소는 노랑에서 주황, 붉은빛까지 다양한 색을 만들어 냅니다. 식물에게 꽃의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꽃가루를 옮겨 줄 곤충에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꽃의 색과 무늬, 향기, 꿀은 모두 수분을 위한 식물의 언어입니다. 다만 모든 곤충이 노란색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식물의 색은 지역과 수분 매개자, 꽃의 구조와 피는 시기에 따라 매우 다르게 진화해 왔습니다. 꽃 색과 수분곤충의 관계를 다룬 하버드 아놀드수목원 글
어떤 꽃은 막 피었을 때 노란빛을 띠었다가 수분이 이루어진 뒤 붉은빛이나 다른 색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는 아직 꿀과 꽃가루가 준비된 젊은 꽃 쪽으로 곤충을 이끌기 위한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지만, 색을 바꾸고 향기를 내며 꿀을 준비함으로써 곤충과 대화합니다. 노란색은 여름 들판에서 식물이 내미는 작은 손짓 같은 색입니다.
그러나 여름의 노랑은 꽃에만 있지 않습니다. 볕에 마른 풀 끝에도 있고, 벼가 아직 익기 전 이삭에 스치는 빛에도 있으며, 오래된 담장 아래의 마른 잎에도 있습니다. 장마가 지나고 해가 다시 강해지면 초록은 더 짙어지고, 그 틈에서 노랑은 더욱 환하게 드러납니다. 사람의 눈은 햇빛을 닮은 색에 자연스럽게 이끌립니다. 긴 더위 속에서 노란 꽃 한 송이는 뜨거움의 상징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빛이 됩니다.
여름에 노란색이 많아 보이는 또 하나의 까닭은, 이 계절이 식물에게 가장 분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봄에 싹을 틔운 식물은 여름에 줄기와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와 씨앗을 준비합니다. 해바라기와 여러 국화과 식물, 노란 원추리처럼 여름 햇빛 아래에서 피는 꽃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강한 빛과 더운 공기, 활발히 움직이는 곤충들 사이에서 자기 생의 가장 중요한 일을 해 냅니다. 여름의 노랑은 단지 보기 좋은 색이 아니라, 살아남고 이어지기 위한 생명의 표정입니다.
사람의 삶에도 노란 계절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한창 자라고 있으나 아직 열매는 보이지 않을 때, 땀을 흘리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누가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여름의 식물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해가 길면 긴 대로 빛을 받고, 비가 오면 비를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때에 꽃을 피웁니다. 다른 꽃의 색을 부러워하지 않고, 다른 나무의 열매를 재촉하지도 않습니다.
노란 꽃은 늘 밝기만 한 색은 아닙니다. 너무 강한 햇빛 아래에서는 눈이 부시고, 마른 풀의 노랑에는 계절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기척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밝음과 쓸쓸함이 함께 있기에 여름의 노랑은 깊습니다. 한창 피어 있는 꽃 속에는 이미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씨앗이 있고, 찬란한 햇빛 속에는 언젠가 저물 빛의 예감도 함께 있습니다.
산책길에서 노란 꽃 하나를 만난다면 잠시 멈추어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단지 여름을 장식하는 색이 아닙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햇빛과 곤충과 바람을 향해 보내는 조용한 신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말합니다. 가장 뜨거운 계절에도 피어날 수 있다고, 짙은 초록 속에서도 자기만의 빛을 낼 수 있다고, 삶은 때때로 노란 꽃 한 송이처럼 조용하고도 환하게 자신을 드러낸다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