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대한 생각

유리창은 막아 주면서도 보게 하는 경계이다

유리창 앞에 서면 사람은 두 세계 사이에 선다. 한쪽에는 내가 있는 방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바람과 거리, 나무와 사람들, 계절이 흘러간다. 창문은 분명 안과 밖을 나눈다. 비와 먼지, 추위와 뜨거운 바람, 거리의 소음과 낯선 시선을 어느 정도 막아 준다. 그러나 벽과는 다르다. 벽은 완전히 가리지만, 유리창은 가리면서도 보여 준다. 경계이되 단절은 아닌 사물이다.

아침의 유리창에는 빛이 먼저 닿는다. 커튼을 젖히면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창밖의 하늘과 나무가 하루의 표정을 알려 준다. 비가 오는 날에는 수많은 빗방울이 유리 위를 천천히 흘러내리고, 겨울에는 차가운 김이 서리며, 여름에는 바깥의 강한 햇빛을 잠시 견디게 한다. 유리창은 말없이 계절의 소식을 받아 방 안으로 전해 주는 얇은 매개자이다.



유리는 본래 모래와 불의 만남에서 태어난 물질이다.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소다석회유리는 규사가 풍부한 모래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며, 유리 제작의 역사는 3,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유리의 기원을 생각하면 더욱 신기하다. 발아래 밟히던 모래가 높은 열을 만나 녹고, 다시 식으며 투명하고 단단한 물질이 된다. 거칠고 불투명한 모래가 빛을 통과시키는 창이 되는 것이다. 코닝 유리박물관의 유리 재료 설명, 3,500년 유리 제작사 개관

창유리가 언제나 지금처럼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 시대의 유리창 조각들도 남아 있으며, 박물관에는 기원후 1세기 무렵 제작된 창유리의 사례가 보존되어 있다. 오늘의 창유리처럼 맑고 넓은 판은 아니었겠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벽에 작은 빛의 길을 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바깥의 빛을 들이고 싶었지만, 바람과 추위까지 들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리창은 인간이 자연과 거리를 두면서도 자연을 바라보려 했던 오래된 소망의 결과이다. 대영박물관 소장 로마 시대 창유리

창문은 방을 넓혀 준다. 작은 방이라도 창밖으로 산이 보이거나, 골목길이 보이거나, 나무 한 그루가 보이면 방은 그 풍경만큼 넓어진다. 반대로 창이 없는 공간은 아무리 넓어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사람에게는 머무를 벽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바라볼 창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락함은 자신을 보호하는 데서 오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바깥 세계와 이어질 때 더 선명해진다.



그러나 유리창은 가까이 있는 것을 멀게 만들기도 한다. 창밖에서 비가 내려도 우리는 젖지 않고, 찬바람이 불어도 방 안에 머물 수 있다. 거리의 사람들은 보이지만 그들의 목소리까지는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유리 한 장은 아주 얇지만, 그 얇음이 만들어 내는 거리는 생각보다 크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되, 그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유리창 앞에 오래 서 있으면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사람에게도 유리창 같은 경계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마음을 활짝 열 수는 없고, 모든 상처와 불안을 그대로 들여보낼 수도 없다. 마음을 지키는 창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창이 너무 두껍거나 완전히 불투명해지면, 사람은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 안에 갇힐 수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막아 버리면, 위로와 사랑, 새로운 풍경도 함께 들어오지 못한다.

좋은 유리창은 안을 지키면서 밖을 보여 준다. 비를 막으면서 빛을 들이고, 추위를 막으면서 하늘을 보게 한다. 삶의 경계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자기 마음을 함부로 내어주지 않되,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되,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혼자 있을 수 있으면서도, 타인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밤이 되면 유리창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낮에는 바깥 풍경을 비추던 창이 밤이 되면 방 안의 모습을 비춘다. 창밖이 어두워질수록 유리에는 내 얼굴과 방의 불빛, 책상 위의 물건들이 드러난다. 세상을 바라보던 창이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결국 자기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이 장면은 묘하다.

유리창은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모래에서 태어난 투명한 벽은 비와 바람을 막고, 빛과 풍경을 들인다. 창밖을 보는 일은 멀리 있는 세상을 향한 일이지만, 때로는 자신이 어떤 방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지 묻는 일이기도 하다. 경계는 우리를 가두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경계는 우리를 지켜 주면서도,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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