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고양이 두 마리
가장 뜨거운 오후의 휴식
골목을 걷다가 벽 아래에 누운 두 고양이를 만났다. 한 마리는 희고 검은 얼룩이 듬성듬성 번진 어미였고, 그 곁에는 검은 털에 흰 앞가슴을 단 작은 고양이가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자기들의 여름 침상으로 정해 둔 듯, 둘은 낡은 회벽과 낮은 턱 사이의 그늘에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폭염은 모든 것을 느리게 만든다. 낮의 빛은 골목 바닥을 오래 달구고, 시멘트 틈의 작은 풀마저 숨을 아낀다. 사람들은 손부채를 펴거나 가게 안으로 몸을 피하고, 자동차의 에어컨 실외기는 뜨거운 숨을 골목으로 다시 뿜어낸다. 그런 날에는 무엇을 하려는 마음도 잠시 바닥에 내려놓게 된다. 살아 있는 일은 때로 견디는 일이 아니라, 더운 시간을 지나가게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미 고양이는 사람을 보았으나 급히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낯선 발걸음 하나를 조용히 재어 보았다. 경계와 피곤이 한 몸에 함께 들어 있는 눈빛이었다. 곁의 새끼는 어미보다 훨씬 작은 몸으로 앞발을 쭉 뻗고 누워 있었다. 아직 세상의 위험을 다 배우지 못한 자세였다. 그러나 그 작은 몸이 편히 누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옆에 어미의 숨이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먹이를 찾지도 않았고, 새끼를 핥아 주지도 않았으며, 적을 쫓지도 않았다. 그저 누워 있었다. 그러나 어미가 그 자리에 누워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끼에게는 하나의 울타리였을 것이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은, 때때로 말을 건네거나 손을 내미는 일보다 먼저, 떠나지 않고 같은 더위를 견디는 일이다.
낡은 벽에는 비가 남긴 얼룩이 있었고, 바닥에는 부서진 돌과 모래가 흩어져 있었다.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골목의 한 귀퉁이였다. 그런데 그곳에 두 생명이 나란히 누워 있으니, 초라한 공간도 잠시 집처럼 보였다. 집이란 완전한 지붕이나 넓은 방이 아니라, 가장 지친 순간에 몸을 눕힐 수 있는 곁인지도 모른다.
나는 발걸음을 조금 더 천천히 옮겼다. 깨우고 싶지 않았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필요한 일은 사냥도, 도망도, 사랑을 증명하는 몸짓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서로의 체온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며, 이 무더운 오후가 기울기를 기다리는 일.
여름은 언젠가 물러간다. 뜨겁던 벽도 밤이면 식고, 골목 끝에 바람이 먼저 도착한다. 그때 어미 고양이는 먼저 일어나 새끼를 데리고 다른 그늘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두 고양이는 내게 오래 남는다. 견디기 어려운 계절일수록 우리는 더 멀리 가기보다, 사랑하는 존재 곁에 조용히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