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이 있는 골목길

 

가로등은 밤의 길을 다 설명하지 않고 한 걸음만 밝혀 준다

해가 지고 골목에 어둠이 내려오면 가로등이 하나씩 켜진다. 낮에는 그 존재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선과 간판, 나무와 건물 사이에 서 있는 가로등은 그저 길가의 시설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밤이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가로등은 말없이 제 빛을 켜고, 사람의 발밑과 골목의 모퉁이, 담장 아래의 작은 풀잎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 있던 길이 비로소 길의 모습을 갖추는 순간이다.



가로등의 빛은 태양처럼 넓지 않다. 도시 전체를 환하게 밝히지도 못하고, 먼 곳까지 비추지도 못한다. 다만 자신이 선 자리 주변을 둥글게 밝힌다. 한두 걸음 앞의 길, 전봇대 아래의 그림자, 비에 젖은 아스팔트의 반짝임을 보여 줄 뿐이다. 하지만 밤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그 빛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도, 다음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만 알 수 있다면 사람은 계속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저녁은 지금보다 더 빨리 어두워졌던 것 같다. 해가 지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제 그만 들어오라고 불렀고,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가로등 불빛이 켜지는 것을 하루의 끝처럼 느꼈다. 가로등 아래에는 늘 사람들이 모였다. 늦게까지 공기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있었고, 더위를 피해 의자를 내놓고 앉은 어른들이 있었으며, 귀가가 늦은 사람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가족도 있었다. 가로등은 골목의 작은 광장이었다. 밝은 빛 하나를 중심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안부를 묻고,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였다.

비가 오는 밤의 가로등은 더 특별하다. 빗방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저 젖음일 뿐이지만, 가로등 아래에서는 수없이 많은 선이 되어 떨어진다. 빛을 받은 빗줄기는 잠시 은빛으로 흔들리고, 젖은 도로는 노란 불빛을 길게 품는다. 우산을 든 사람의 그림자는 물 위에서 일그러지고, 자동차가 지나가면 고인 빗물에 빛이 흔들린다. 비 오는 밤의 가로등은 세상이 잠시 수채화가 되는 순간을 보여 준다.

가로등 아래의 그림자도 생각하게 된다. 빛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 가로등은 길을 밝혀 주지만, 동시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홀로 걷는 사람은 자기보다 앞서거나 뒤따르는 그림자를 본다. 그것은 때로 외로움처럼 보이고, 때로는 자신이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증거처럼 보인다. 말이 없고 형태도 없지만, 그림자는 걸음을 맞추어 준다.

도시의 밤은 낮보다 더 많은 마음을 품고 있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병원에서 나온 사람, 늦은 약속을 마치고 혼자 걷는 사람, 편의점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사람,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의 얼굴이 가로등 아래를 지난다. 각자의 하루는 다르지만, 밤길을 걷는 사람들은 잠시 같은 빛을 나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같은 불빛 아래서 스쳐 지나가며, 각자의 고단함과 기대를 조용히 품고 집으로 향한다.

가로등은 대단한 위로를 하지 않는다. 삶이 잘될 것이라고 약속하지도 않고,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 주지도 않는다. 그저 꺼지지 않고 제 자리에 서서, 지금 이곳을 밝힌다. 그 단순함이 때로는 깊은 위로가 된다. 인생에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없는 밤이 있다. 앞날은 어둡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으며, 다음 선택조차 망설여지는 시간이다. 그때 필요한 것은 모든 답을 주는 거대한 빛이 아니라, 한 걸음 앞을 보여 주는 작은 빛일지도 모른다.

가로등은 밤의 길을 다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발밑을 비추고, 길을 잃지 않도록 모퉁이 하나를 밝혀 준다. 그 빛을 따라 한 걸음 더 걷다 보면 또 다른 가로등이 나타난다. 그렇게 사람은 밤길을 지나고, 어둠은 끝내 새벽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오늘도 골목의 가로등은 누구를 기다리지도, 누구를 기억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의 귀가를 지켜보고, 밤의 침묵을 견디며, 제게 주어진 빛을 묵묵히 나눈다.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빛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가로등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가르쳐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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