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자전거 위로 자라는 것들

멈춘 자전거 위로 자라는 것들

자전거 몇 대가 울타리 곁에 모여 있다. 한때는 저마다 다른 길을 달렸을 자전거들이다. 붉은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 분홍빛 몸체를 지닌 자전거, 손잡이가 녹슬고 안장이 닳은 자전거가 서로 기대어 있다. 누군가의 출근길을 데려다주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장바구니를 실었을 것이며, 어쩌면 아이를 뒤에 태우고 골목을 천천히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바퀴는 돌지 않고, 핸들은 어느 방향도 가리키지 않는다.

그 멈춘 자전거 위로 덩굴식물이 자라고 있다. 가느다란 줄기가 바구니의 철망 사이를 지나고, 잎은 손잡이와 브레이크 선을 덮는다. 식물은 이 자전거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움직이는 물건에는 뿌리를 내릴 수 없고, 빠르게 지나가는 것에는 잎을 펼칠 수 없다. 덩굴은 멈춘 것에만 조용히 다가가 몸을 기대고, 비어 있는 틈을 찾아 자신의 길을 만든다.



자전거는 본래 움직임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페달을 밟으면 바퀴가 돌고, 바퀴가 돌면 몸은 앞으로 나아간다. 자동차보다 느리지만 걷는 것보다 빠르고, 사람의 힘이 그대로 속도가 되는 탈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오르막에서는 숨이 차며, 내리막에서는 잠시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자전거에는 언제나 사람의 호흡이 남아 있다. 엔진의 소리가 아니라 다리의 힘과 심장의 박동으로 움직이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움직임에는 멈춤이 찾아온다. 더 좋은 자전거가 생겼을 수도 있고, 몸이 예전처럼 페달을 밟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사를 하며 두고 갔을 수도 있고, 고장이 난 뒤 수리할 마음을 미루었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잠시 세워 둔 것이었을지 모른다. 며칠만 두었다가 다시 타려 했고, 다음 주말에는 바퀴에 바람을 넣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늘 그렇게 쌓인다. 미루어진 일은 어느새 잊힌 일이 되고, 잊힌 물건은 자기만의 계절을 맞이한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자연이 들어온다. 덩굴은 자전거의 주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바구니가 장바구니를 담지 못하게 된 순간, 식물은 그 빈 철망을 제 몸을 펼칠 자리로 삼는다. 녹슨 손잡이와 해진 안장, 움직이지 않는 바퀴는 식물에게 장애물이 아니라 올라갈 수 있는 구조물이 된다. 인간에게 쓸모를 잃은 사물도 자연에게는 새로운 지지대가 된다.

이 장면은 쓸쓸하면서도 이상하게 평온하다. 버려진 자전거는 한 시절의 끝을 보여 주지만, 그 위의 푸른 잎은 끝이 곧 소멸만을 뜻하지 않음을 말해 준다. 사라진 기능 위에 다른 생명이 자라고, 멈춘 바퀴 곁에서 계절은 계속 앞으로 간다. 자전거가 더는 사람을 태우고 달리지 못해도, 덩굴은 햇빛을 향해 조금씩 나아간다. 한 존재의 멈춤이 다른 존재의 시작이 되는 풍경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시간이 있다. 한때는 열심히 붙들었던 일이 어느 날 손에서 놓이고, 자주 찾던 장소가 더 이상 갈 곳이 되지 않으며, 사랑했던 물건이 구석에 밀려나는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더는 쓰이지 않는 자전거처럼,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되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한 가지 쓰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멈춘 자리에도 새로운 계절은 오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른 의미가 자란다.

덩굴은 자전거를 비난하지 않는다. 왜 더 이상 달리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 다만 그 곁에 와서 가는 줄기를 감고, 잎을 내고, 자신에게 주어진 빛을 향해 자란다. 자연은 대단한 위로의 말을 하지 않지만,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삶을 다시 설명한다. 모든 것은 제때에 피고, 제때에 멈추며, 멈춘 자리에서도 다른 생명은 제 길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울타리 곁의 자전거들은 오늘도 움직이지 않는다. 바퀴는 녹슬고 바구니에는 더 이상 장을 본 물건이 담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이로 난 잎들은 여전히 푸르고, 가느다란 덩굴은 조금씩 더 멀리 뻗어 간다. 버려진 자전거 위에서 자라는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 안에도, 끝난 줄 알았던 시간 뒤에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희미한 믿음이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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