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목치기, 여름의 추억

폭염의 한가운데서 떠오르는 여름

한낮의 기온이 사람의 몸을 밀어붙이는 날이다. 아스팔트에서는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고, 건물의 유리창은 햇빛을 되받아 눈을 찌푸리게 한다. 잠시 밖을 걸었을 뿐인데 셔츠가 등에 달라붙고, 그늘 하나가 마치 작은 피난처처럼 느껴진다. 에어컨이 켜진 실내로 들어가면 비로소 숨이 돌아오는 시대이다. 리모컨을 누르면 차가운 바람이 나오고,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나 물이 흐른다. 더위를 견디는 방식은 분명 편리해졌다.



그런데 폭염이 깊어질수록 이상하게도 아주 오래전 여름이 떠오른다. 냉방기기보다 바람을 더 기다리던 시절의 여름이다. 오후의 해가 조금 기울면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냇가로 모여들었다. 누가 먼저 뛰어들었는지, 누가 더 멀리 헤엄쳤는지, 누가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았는지는 지금 와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맨발로 돌을 밟고 물가로 내려가던 감촉과, 물에 들어서는 순간 몸을 감싸던 차가움만은 오래 남아 있다.

냇물은 지금의 수영장처럼 깨끗하게 정돈된 공간이 아니었다. 물속에는 미끄러운 돌이 있었고, 풀잎과 작은 벌레가 떠다니기도 했다. 깊은 곳은 함부로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경고가 있었고, 비가 많이 온 다음날이면 물살이 세어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 냇가는 여름의 학교였고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몸의 무게가 사라지는 것을 배웠고, 햇볕 아래에서 한참 놀다가도 물 한 번 끼얹으면 세상이 새로워지는 것을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우물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은 손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차가웠다. 더위에 달아오른 등판에 물을 끼얹어 주던 등목의 순간은 작은 축복과 같았다. 어른의 손이 바가지로 물을 떠서 등을 따라 천천히 흘려보내면, 뜨거웠던 몸이 움찔하며 식었다. 물줄기는 목덜미를 지나 척추를 타고 내려갔고, 아이는 저도 모르게 “시원하다”는 소리를 냈다. 그 한마디에는 더위를 이겨 냈다는 기쁨과, 누군가가 나를 돌보아 준다는 안심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때의 여름에는 불편함이 많았다. 땀이 나도 곧바로 에어컨을 켤 수 없었고, 물이 필요할 때마다 쉽게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기에 물리고, 선풍기 바람을 차지하려 형제끼리 다투기도 했으며, 더운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 시절을 무조건 아름답게만 기억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오늘의 에어컨과 상수도, 병원과 냉장고는 우리를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 준 소중한 문명이다.

그럼에도 그 여름에는 지금과 다른 낭만이 있었다. 더위를 혼자 견디지 않았다는 낭만이다. 냇가에는 친구들이 있었고, 우물가에는 가족의 손길이 있었다.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가는 방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았고, 저녁이면 마당이나 골목에서 바람을 기다렸다. 불편함은 사람들을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게 했다. 물 한 바가지를 나누고, 부채질을 해 주고,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을 함께 먹는 일이 자연스러운 위로였다.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피한다. 편리하고 조용하며, 어쩌면 조금은 고독한 여름이다. 몸은 이전보다 쉽게 식힐 수 있지만, 마음은 어디에서 식혀야 하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차가운 바람은 충분하지만 함께 웃을 사람은 부족하고, 깨끗한 물은 넘치지만 어린 시절의 냇물처럼 한꺼번에 뛰어들 수 있는 시간은 없다.

폭염은 매년 찾아오지만, 여름은 매년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어느 해의 여름은 냇가의 물소리로 남고, 어느 해의 여름은 우물가의 차가운 바가지 물로 남는다. 또 어느 해의 여름은 에어컨 실외기의 소리와 뜨거운 아스팔트의 냄새로 기억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삶은 편리해졌지만, 마음은 종종 그 불편했던 여름 쪽으로 돌아간다.

아마 그리운 것은 냇물이나 우물 자체만은 아닐 것이다. 더위 속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웃던 시간, 물에 젖은 채 집으로 돌아오던 저녁, 나를 향해 바가지를 기울여 주던 손길이 그리운 것이다. 폭염의 한가운데에서 문득 옛 여름이 떠오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몸을 식혀 주던 물보다, 마음을 덥혀 주던 사람들이 그 시절의 여름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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