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익어간다. 가을의 시작인가.

 


불알보다 작던 감들이 어느새 주먹만큼 컸다. 올해는 비도 적어 일조량이 많아 풍년이 들 것이다.

감이 익는 시간

길가의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잎들은 아직 짙은 여름빛을 품고 있고,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다. 매미는 제철을 다 누리겠다는 듯 소란스러운데, 가지마다 매달린 감은 벌써 제 속에서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단단하고 푸른 감이다. 손으로 만지면 떫은맛이 먼저 떠오를 듯하고, 햇볕을 받아도 노랗게 익었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감의 푸름은 한여름 처음의 빛과 다르다. 완고하게 푸른 것이 아니라, 익음의 문턱에 서 있는 푸름이다. 태양이 오래 머물렀던 자리에 아주 옅은 황금빛이 번지기 시작한다.

감은 서두르지 않는다. 비가 몇 번 지나가고, 밤공기에 서늘한 기운이 한 번씩 스며들고, 바람이 잎의 뒷면을 뒤집어 보일 때까지 제 자리를 지킨다. 뜨거움을 견딘 시간은 감의 속으로 들어가 단맛이 된다. 여름은 소리 없이 지나가지만, 감나무는 그 모든 날을 잊지 않고 열매 안에 차곡차곡 저장한다.

문득 생각한다. 사람의 시간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어떤 날들은 아무 변화 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뜨겁기만 한 날, 견디기만 한 날,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 같지 않은 날들이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마음이 조금씩 깊어지고, 말이 조금씩 낮아지며,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이 익어 가는지도 모른다.

가을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미 시작된다. 감이 푸른 몸으로 가을을 품듯, 계절은 제 그림자를 먼저 보내어 다음 시간을 알린다.

그래서 감나무 아래에 서면 조급해하던 마음이 잠시 멈춘다. 아직 푸르다고 해서 덜 자란 것은 아니다. 아직 손에 잡히는 결실이 없다고 해서 시간이 헛된 것도 아니다. 햇빛과 바람, 견딤과 기다림이 저마다의 몫을 다하고 있을 때, 감은 익고 계절도 익는다.

멀리서 보면 여름은 여전히 한창이다. 하지만 가지 끝의 감들은 이미 알고 있다. 뜨거움의 끝에는 서늘한 바람이 오고, 푸름의 깊은 곳에는 단맛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렇게 가을은, 아무 말 없이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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